도서 취미/좋은 글과 좋은 시

김소월 시집 1

푸른 메아리 2021. 5. 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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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시집 1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 (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님의 말씀

세월이 물과 같이 흐른 두 달은

길어 둔 독엣 물도 찌었지마는

가면서 함께 가지 하던 말씀은

살아서 살을 맞는 표적이외다

 

봄풀은 봄이 되면 돋아나지만

나무는 밑그루를 꺾은 셈이요

새라면 두 죽지가 상한 셈이라

내 몸에 꽃필 날은 다시 없구나

 

밤마다 닭소리라 날이 첫시면

당신의 넋맞이로 나가 볼 때요

그믐에 지는 달이 산에 걸리면

당신의 길신가리 차릴 때외다

 

세월은 물과 같이 흘러가지만 

가면서 함께 가자 하던 말씀은

당신을 아주 잊던 말씀이지만

죽기 전 또 못잊을 말씀이외다


산유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는 우는 작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지네


먼 후일

먼 후일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후일 그때에 [잊었노라]


못 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 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 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우리다.

 

그러나 또 한편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이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님의 노래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 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 지고 저무도록 귀에 들려요

밤 들고 잠들도록 귀에 들려요

 

고이도 흔들리는 노래 가락에

내 잠은 그만이나 깊이 들어요

고적한 잠자리에 홀로 누워도 

내 잠은 포스근히 깊이 들어요

 

그러나 자다 깨면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잃어버려요

들으면 드는 대로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 


만나려는 심사

저녁 해는 지고서 어스름의 길,

저 먼 산엔 어두워 잃어진 구름,

만나려는 심사는 웬 셈일까요,

그 사람이야 올 길 바이 없는데,

발길은 뉘 마중을 가잔 말이냐.

하늘엔 달 오르며 우는 기러기.


닭소래

그대만 없게 되면

가슴 뛰노는 닭소래 늘 들어라.

 

밤은 아주 새어올 때 

잠은 아주 달아날 때

 

꿈은 이루기 어려워라.

 

저리고 아픔이어

살기가 왜 이리 고달프냐.

 

새벽 그림자 산란한 들풀 위를 

혼자서 거닐어라. 

 


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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