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집 7
구름
저기 저 구름을 잡아 타면
붉게도 피로 물든 저 구름을,
밤이면 새카만 저 구름을,
잡아 타고 내 몸은 저 멀리로
구만 리 긴 하늘을 날아 건너
그대 잠든 품속에 안기렸더니,
애스러라, 그리는 못한대서,
그대여, 들으라 비가 되어,
저 구름이 그대한테로 내리거든,
생각하라, 밤 저녁, 내 눈물을.
동경하는 애인
너의 붉고 부드러운
그 입술에보다
너의 아름답고 깨끗한
그 혼에다
나는 뜨거운 키스를......
내 생명의 굳센 운율은
너의 조그마한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깊고 깊은 언약
몹쓸은 꿈을 깨어 돌아 누울 때,
봄이 와서 멧나물 돋아 나올 때,
아름다운 젊은이 앞을 자날 때,
잊어버렸던 듯이 저도 모르게,
얼결에 생각나는 '깊고 깊은 언약'
강촌(江村)
날 저물고 돋는 달에
휜 물은 솰솰......
금모래 반짝......
청노새 몰고 가는 낭군!
여기는 강촌
강촌에 내 몸은 홀로 사네.
말하자면, 나도 나도
늦은 봄 오늘이 다 진(盡)하도록.
백년처권(百年妻卷)을 울고 가네.
길세 저문 나는 선비,
당신은 강촌에 홀로 된 몸.
눈
새하얀 흰눈 가볍게 밟을 눈,
재 같아서 날릴 듯 꺼질 듯한 눈,
바람엔 흩어져도 불길에야 녹을 눈.
계집의 마음. 남의 마음.
바람과 봄
봄에 부는 바람, 바람 부는 봄,
적은 가지 흔들리는 부는 봄바람,
내 가슴 흔들리는 바람, 부는 봄,
봄이라 바람이라 이 내 몸에는
꽃이라 술잔이라 하며 우노라.
삭주구성(朔州龜城)
물로 사흘 배 사흘
먼 삼천리
더더구나 걸어 넘는 먼 삼천리
삭주구성은 산을 넘은 육천리요
물맞아 함빡히 젖은 제비도
가다가 비에 걸려 오노랍니다
저녁에는 높은 산
밤에 높은 산
식주구성은 산 넘어
먼 육천리
가끔가끔 꿈에도 사오천리(四五千里)
가다오다 돌아오는 길이겠지요
서로 떠난 몸이길래 몸이 그리워
님의 둔 곳이길래 곳이 그리워
못 보았소 새들도 집이 그리워
남북으로 오며가며 아니합디까
들 끝에 날아가는 나는 구름은
밤쯤은 어디 바로 가 있을텐고
삭주구성은 산 넘어
먼 육천리
월색(月色)
달빛은 귀뚜라미 울 때는
우둑히 시름없이 잡고섰던 그대를
생각하는 밤이어, 오오 오늘 밤
그대 찾아 데리고 서울로 가나?
새벽
낙엽이 발이 숨는 못물가에
우뚝우뚝한 나무그림자
물빛조차 어슴프레히 떠오르는데,
나 혼자 섰노라, 아직도 아직도,
동녘 하늘은 어두운가.
천인(天人)에도 사랑눈물, 구름되어,
외로운 꿈의 베개 흐렸는가
나의 님이어, 그러나 그러나
고이도 불그스레 물질러와라
하늘 밟고 저녁에 섰는 구름.
반달은 중천에 지새일 때.
산 위에
산 위에 올라서서 바라다보면
가로막힌 바다를 마주 건너서
님 계시는 마을이 내 눈 앞으로
꿈 하늘 하늘같이 떠오릅니다
흰모래 모래 빗긴 선창가에는
한가한 뱃노래가 멀리 잦으며
날 저물고 안개는 깊이 덮여서
흩어지는 물꽃뿐 아득합니다
이윽고 밤 어둡는 물새가 울면
물결조차 하나 둘 배는 떠나서
저 멀리 한바다로 아주 바다로
마치 가랑잎같이 떠나갑니다.
나는 혼자 산에서 밤을 새우고
아침 해 붉은 볕에 몸을 씻으며
귀 기울고 솔곳이 엿듣노라면
님 계신 창 아래로 가는 물노래
흔들어 깨우치는 물노래에는
내 님이 놀라 일어 찾으신대도
내 몸은 산 위에서 그 산 위에서
고이 깊이 잠들어 다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