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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를 읽고

푸른 메아리 2021. 3. 28.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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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글그램

오래전 모모를 읽고 ...

말을 하다 보면 도대체 내가 무슨 얘길 하는지 헤매거나 갑자기 하기 싫어질 때가 있다. 그러면 입을 굳게 다물고 언짢은 기분으로 잠시 잠깐을 보내다가 곧바로 그것조차 잊어버린다. 쓸데없는 말, 쓸데없는 생각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듣노라 하면 마음이 불편하고 어떤 핑계를 찾아서 귀를 막고 싶어 진다. 그 사람의 말소리는 자장가가 되고 그 사람이 말하는 의미는 하나의 불필요한 설교로 듣는 이로 하여금 지루함에 못 박아 힘들게 한다.

나는 사람들의 얘기를 가려서 들으려 했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나에게 독이 되는 좋은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말소리, 음악소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것들을 다 듣다가는 아마 고막이 터져버릴 것 같다.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간들 생각들은 본인을 조급하고 불안하게 조여 오고 있었다. 무언가의 결과에 만족을 느끼며 세상을 흑과 백으로 구분 지어 서툴러 행동하려 하였다. 꿈을 위해 시험성적을 위해 나 자신이 행복을 느끼는 것은 오로지 무언가를 쟁취했을 때만이라고 나에게 세뇌시켰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깨진 독에 물 붓듯 마음이 허탈하고 슬퍼졌다. 환경과 이 세상이 나를 이렇게 만들고 난 어쩔 수 없이 절망 속에서 순응하며 재미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가까이 오기도 전에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지루함은 바쁜 일상 속에 느낄 수 없었다. 항상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느낄 수 없었다. 모모에 나오는 회색 신사들이 내 주변, 내도시, 나의 나라를 회색빛으로 물들여 시간을 도둑질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시간을 아끼기 위한 핑계로 행복을 반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런 무료함은 정말 싫다.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어떻게~?


모모는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다. 옛 원형 터 한 구석이 꼬마 아이의 집이었다. 모모의 특기는 상대방의 말에 귀담아듣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전략적으로 어찌나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여 듣던지 모모를 싫어하는 사람은 지구 상에 한 명도 없었다.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나를 위해 귀 기울여 주는 소녀의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런운지! 내 말만 하는 고집스러운 여우보다 자신의 시간을 주변 사람들을 위해 나눠주는 모모의 마음은 따뜻할 것이다.

친구에게 말을 하다 보면 내 이야기를 듣지 않고, 아니 듣는 척하다가 나중에 동문서답하는 친구가 있다. 나는 화를 내기도 하고 간접적으로 비꼬우기도 하며 손으로 비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귀담아듣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었다. 나 또한 내 말만 하는 수다쟁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머릿속의 계산기는 벌써 좋고 싫은 것을 구분하였고, 따뜻한 마음은 사라지고 겉치레 인사와 진심 없는 위로만 입가에 맴돌 뿐이었다.

미하엘 엔더의 작품을 읽는 시간은 정말 설레고 기쁘다.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어른보다 큰 꼬마 아이가 되어서 동화 속 이야기 문을 두드린다. 이미 경험하였고 보았던 이야기보따리는 끝없이 흘러 나고, 나는 마냥 행복하다. 모모 이야기는 자기 자신을 위한 두려움과 불안이 아닌 상대방과 친구를 위한 시간을 찾아주는 모모의 승리로 결말을 맺는다. 모모는 자기 자신이 아닌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마지막일지 모르는 한 시간을 움켜쥐고 회색 신사와 싸워 나갔다. 눈 깜박할 사이에 계속해서 사라지는 시간을 금이나 보석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소중하기 때문에 나눠주는 것이다. 서로서로 나눠가진 시간들이 나와 함께하면 따뜻해지고 힘이 나는 것이 아닐까?

모모는 친구들의 말을 귀담아듣는다. 상대방을 존중하며 인정하면서 귀 기울여 들어주는 모모의 모습을 내 속에 담고 싶다.


20년 전 모모라는 책을 읽고 그때의 나를 들여다보았다. 방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독서노트는 나를 슬프게 한다. 나의 젊고 아름다운 시절 나는 참 복잡하게 살았구나!

착하지도 않고 척하지도 않는 나는 책을 읽으며 삶을 고쳐나가려고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

모모라는 책을 20년 후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오늘 나는 긍정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불안하지도 않고, 계산적이지도 않다. 조금 편해진 듯, 많이 체념한 듯, 오늘 나는 그때보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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