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 이상 시 모음
꽃나무
벌판한복판에꽃나무하나가있소. 근처(近處)에는꽃나무가하나도없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 열심(熱心)으로생각하는것처럼열심으로꽃을피워가지고섰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 나는막달아났소. 한꽃나무를위하여그러는것처럼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 내었소.
이런 시
역사를하노라고땅을파다가커다란돌을하나끄집어내어놓고보니도무지어디서인가본듯한생각이들게모양이생겼는데목도들이그것을메고나가더니어디다갖다버리고온모양이길래 쫓아나가보니위험하기짝이없는큰길가더라.
그날밤에한소나기하였으니필시그돌이깨끗이씻꼈을터인데그이틀날가보니까변괴로다간데온데없더라. 어떤돌이와서그돌을업어갔을까나는참이런처량한생각에서아래와같은작문을지었다.
「내가그다지사랑하던그대여내한평생에차마그대를잊을수없소이다. 내차례에못을사랑인줄은알면서도나혼자는꾸준히생각하리라. 자그러면내내어여쁘소서」
어떤돌이내얼굴을물끄러미치어다보는것만같아서이런시는그만찢어버리고싶더라.
명경(明鏡)
여기 한페-지 거울이 있으니
잊은 계절에서는
얹은머리가 폭포처럼 내리우고
울어도 젖지 않고
맞대고 웃어도 휘지 않고
장미처럼 착착접힌
귀
들여다보아도 들여다보아도
조용한 세상이 맑기만 하고
코로는 피로한 향기가 오지 않는다.
만적만적 하는 대로 수심이 평행하는
부러 그러는 것 같은 거절
우편으로 옮겨앉은 심장일망정 고동이
없으란 법 없으니
설마 그런? 어디 觸診......
하고 손이 갈 때 지문이 지문을
가로막으며
선뜩하는 차단뿐이다.
오월이면 하루 한번이고
열 번이고 외출하고 싶어하더니
나갔든길에 안돌아오는 수도 있는 법
거울이 책장 같으면 한 장 넘겨서
맞섰든 계절을 만나련만
여기 있는 한페-지
거울은 페-지의 그냥 표지-
행로(行路)
기침이난다. 공기속에공기를힘들여배앝아놓는다. 답답하게걸어가는길이내스토리오리요기침해서찍는句讀를심심한공기가 주물러서삭여버린다. 나는한章이나걸어서鐵路(철로)를건너지를적에그때누가내經路를디디는이가있다. 아픈것이匕首(비수)에베어지면서鐵路(철로)와의열십자로어울린다. 나는무너지느라고기침을떨어뜨린다. 웃음소리가요란하게나더니自嘲(자조)하는表情(표정)위에독한잉크가끼얹힌다. 기침은思念(사념)위에그냥주저앉아서떠든다. 기가탁막힌다.
무제
내 마음의 크기는 한 개 궐련 기러기만하다고 그렇게 보고,
處心(처심)은 숫제 성냥을 그어 궐련을 붙여서는
숫제 내게 자살을 권유하는도다.
내 마음은 과연 바지작 바지작 타들어가고 타는 대로 작아가고,
한 개 궐련 불이 손가락에 옮겨 붙으렬 적에
과연 나는 내 마음의 공간에 마지막 재가 떨어지는 부드러운 ㅇㅁ향을 들었더니라.
처심은 재떨이를 버리듯이 대문 밖으로 나를 쫒고
그리고 조인이 끝난 듯이 빗장을 미끄러뜨리는 소리
여러 번 굽은 골목이 담장이 좌우 못 보는 내 아픈 마음에 부딪혀
달은 밝은데
그때부터 가까운 길을 일부러 멀리 걷는 버릇을 배웠더니라.
[한국의 명시] 이상 시인
이상(李箱, 1910~1938) : 서울 출생, 본명 김해경(金海卿), 경성고등공업 건축과 졸업.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자의식 작가. <구인회> 동인. 난해한 시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자의식 문학을 리얼하게 묘파. 작품으로 「날개」, 「오감도」, 「종생기」, 「실락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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