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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혈의 아침 - 이상 시인

푸른 메아리 2021. 5. 27.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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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시] 이상 시 모음

이상(李箱, 1910~1938) : 서울 출생, 본명 김해경(金海卿), 경성 고등 공업 건축과 졸업.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자의식 작가. <구인회> 동인. 난해한 시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자의식 문학을 리얼하게 묘파. 작품으로 「날개」, 「오감도」, 「종생기」, 「실락원」 등이 있다. 

 

각혈의 아침

사과는 깨끗하고 또 춥고 해서 사과를 먹으면 시려워진다.

어째서 그렇게 냉랭한지 冊床(책상) 위에서 하루 종일 색깔을 변치 아니한다 차차로-- 둘이 다 시들어 간다.

 

먼 사람이 그대로 커다랗다 아니 가까운 사람이 그대로 자그마하다 아니 어느 쪽도 아니다 나는 그 어느 누구와도 알지 못하니 말이다 어니 그들의 어느 하나도 나를 알지 못하니 말이다 아니 그 어느 쪽도 아니다(레일을 타면 電車(전차)는 어디라도 갈 수 있다)

 

담배 연기의 한 무더기 그 室內(실내)에서 나는 긋지 아니한 성냥을 몇 개비고 부러뜨렸다. 그  室內(실내)의 연기의 한 무더기 點火(점화)되어 나만 남기고 잘도 타나보다 잉크는 축축하다 연필로 아무렇게나 시커먼 面(면)을 그리면 鉛粉(연분)은 종이 위에 흩어진다.

 

리코오드 고랑을 사람이 달린다 거꾸로 달리는 불행한 사람은 나 같기도 하다 멀어지는 音樂(음악) 소리를 바쁘게 듣고 있나보다

발을 덮는 女子(여자) 구두가 가래를 밟는다 땅에서 貧困(빈곤)이 묻어온다 받아 써서 通念(통념) 해야 할 暗號(암호) 쓸쓸한 초롱불과 우체국 사람들이 壽命(수명)을 거느리고 멀어져 가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나의 뱃속에 通信(통신)이 잠겨 있다.

새장 속에서 지저귀는 새 나는 콧속 털을 잡아 뽑는다

밥 소란한 靜寂(정적) 속에서 未來(미래)에 실린 記憶(기억)이 종이처럼 뒤엎어진다

벌써 나는 내 몸을 볼 수 없다 푸른 하늘이 새장 속에 있는 것 같이

멀리서 가위가 손가락을 연신 연방 잘라 간다

검고 가느다란 무게가 내 눈구멍에 넘쳐 왔는데 나는 그림자와 서로 껴안는 나의 몸뚱이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알맹이까지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는둥

피가 물들기 때문에 여윈다는 말을 듣곤 먹지 않았던 일이며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 種子(종자)는 이제 심어도 나지 않는고 단정케 하는 사과 겉껍질의 빨간색 그것이다.

空氣(공기)마저 얼어서 나를 못 通(통)하게 한다 뜰을 鑄型(주형)처럼 한 장 한 장 떠낼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呼吸(호흡)에 彈丸(탄알)을 쏘아넣는 놈이 있다

病席(병석)에 나는 조심조심 조용히 누워 있노라니까 뜰에 바람이 불어서 무엇인가 떼굴떼굴 굴려지고 있는 그런 낌새가 보였다

별이 흔들린다 나의 記憶(기억)의 순서가 흔들리듯

어릴 적 寫眞에서 스스로 病(병)을 진단한다

 

가브리엘 天使菌(내가 가장 不世出(불세출)의 그리스도라 치고)

이 殺菌劑(살균제)는 마침내 肺結核(폐결핵)의 혈흔이었다(고?)

 

肺(폐)속 페인트 칠한 十子架(십자가)가 날이면 날마다 발돋움을 한다

肺(폐)속엔 料理師(요리사) 天使(천사)가 있어서 때때로 소변을 본단 말이다

나에 대해 달력의 숫자는 차츰차츰 줄어든다

 

네온사인은 색소폰 같이 야위었다

그리고 나의 청맥은 휘파람 같이 야위었다

 

하얀 天使(천사)가 나의 肺(폐)에 가벼이 노크한다.

黃昏(황혼) 같은 肺(폐)속에서는 고요히 물이 끓고 있다

고무電線(전선)을 끌어다가 星(성)베드로가 盜聽(도청)을 한다

그리곤 세 번이나 天使(천사)를 보고 나는 모른다고 한다

그때 닭이 홰를 친다-- 어엇 끓는 물을 엎지르면 야단 야단--

 

봄이 와서 따스한 건 地球(지구)의 아궁이에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모두가 끓어오른다 아지랑이처럼

나만이 사금파리 모양 남는다

나무들조차 끓어서 푸른 거품을 자꾸 뿜어내고 있는데도

1933.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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