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악 시모음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1937) / 낡은 집(1938) /그리움(1945)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우리 집도 아니고 일가 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노령(露領)을 다니면서까지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한 마디 남겨 두는 말도 없었고, 아무을 만(灣)의 파선도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목침을 반듯이 벤 채 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갈앉고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 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를 가리켰다 때늦은 의원이 아모 말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의 손으로 눈빛 미명은 고요히 낯을 덮었다 우리는 머리말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