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 시인의 승무(1939), 봉황수(1940)
승무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 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승무는 삶의 번뇌와 세속적 번뇌를 종교적으로 승화하기를 소망하는 시이다. 달이 비치는 어느 밤, 오동잎이 소리없이 떨어지는 뜰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여승의 모습을 통해 승무의 춤동작을 형상화함으로써 전통적인 서정과 승무 속의 불교적인 정화의 염원을 절묘하게 융합시키고 있다.
봉황수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丹靑(단청), 풍경 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玉座(옥좌) 위엔 如意珠(여의주) 희롱하는 雙龍(쌍용)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甃石(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佩玉(패옥) 소리도 없었다. 品石(품석) 옆에서 正一品(정일품), 從九品(종구품)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九天(구천)에 號哭(호곡)하리라.
봉황수란 봉황의 시름과 근심을 가리킨다. 이 시의 봉황은 일제강점기 민족을 상징하는 동시에 화자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이시는 망국의 비애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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