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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시집 8

푸른 메아리 2021. 5. 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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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시집 8

바리운 몸

꿈에 울고 일어나

들에

나와라.

 

들에는 소슬비

머구리는 울어라.

풀 그늘 어두운데

 

뒷짐지고 땅 보며 머뭇거릴 때,

 

누가 바딧불 꾀어드는 수풀 속에서

'간다 잘살아라' 하며, 노래불러라.


맘에 속의 사람

잊힐 듯이 볼 듯이 늘 보던 듯이

그립기도 그리운 참말 그리운

이 나의 맘에 속에 속 모를 곳에

늘 있는 그 사람을 내가 압니다.

 

언제도 언제라도 보기만 해도

다시 없이 살뜰한 그 내 사람은

한두 번만 아니게 본듯 하여서

나자부터 그리운 그 사람이요.

 

남은 다 어림없다 이를지라도

속에 깊이 있는 것, 어찌하는가.

하나 진작 낯 모를 그 내 사람은

다시 없이 알뜰한 그 내 사람은......

 

나를 못 잊어 하여 못 잊어 하여

애나는 그 사랑이 눈물이 되어,

힌끗 만나리 하는 내 몸을 가져

몹쓸음을 둔 사람, 그 나의 사람?


밭고랑 위에서

우리 두 사람은

키 높이 가득 자란 보리밭, 밭고랑 위에 앉았어라 

일을 마치고 쉬는 동안의 기쁨이여, 

지금 두 사람의 이야기에는 꽃이 필 때.

 

오오 빛나는 태양은 내려 쪼이며 

새 무리들도 즐거운 노래, 노래불러라.

오오 은혜여, 살아 있는 몸에는 넘치는 은혜여,

모든 은근스러움이 우리의 맘 속을 차지하여라.

 

세계의 끝은 어디? 자애의 하늘은 넓게도 덮였는데,

우리 두 사람은 일하며, 살아 있었어.

하늘과 태양을 바라보아라 날마다 날마다도,

새라 새로운 환희를 지어 내며, 늘 같은 땅 위에서.

 

다시 한번 활기있게 웃고나서, 우리 두사람은

바람에 일리우는 보리밭 속으로

호미들고 들어갔어라, 가지런히 가지런히,

걸어 나아가는 기쁨이여, 오오 생명의 향상이여.


엄숙

나는 혼자 뫼 위에 올랐어라.

솟아 퍼지는 아침 햇볕에

풀잎도 번쩍이며

바람은 속삭여라.

그러나

아아 내 몸의 상처 받은 맘이어

맘은 오히려 저리고 아픔에 고요히 떨려라

또 다시금 나는 이 한때에

사람에게 있는 엄숙을 모두 느끼면서.

 


묵념(默念)

이슥한 밤, 밤기운 서늘할 제

홀로 창턱에 걸어앉아, 두 다리 늘이우고,

첫 머구리 소리를 들어라.

애처롭게도, 그대는 먼첨 혼자서 잠드누나.

 

내 몸은 생각에 잠잠할 때, 희미한 수풀로서

촌가의 액(厄)맥이 제(祭)지나는 불빛은 새여오며,

이윽고, 비난수도 머구리 소리와 함께 잦아져라.

가득히 차오는 내 심령은...... 하늘과 땅 사이에.

 

나는 무심히 일어 걸어 그대의 잠든 몸 위에 기대어라

움직임 다시 없이, 만뢰(萬籟)는 구적(俱寂)한데,

회요(熙耀)히 나려비추는 별빛들이

내 몸을 이끌어라, 무한히 더 가깝게.


적어졌소

적어졌소 적어졌소,

당신이 못내 생각

나를 생각하던 생각 적어졌소.

적어졌소, 적어졌소.

오늘을 종일 일에 부대끼우고

어스름을 맞춘 님 오나 안 오나

들끝 갈밭 속에 갈까 말을까

고목 등걸 기대고 조바심할 때.


희망

날은 저물고 눈이 내려라

낯설은 물가으로 내가 왔을 때.

산 속의 올빼미 울고 울며

떨어진 잎들은 눈 아래로 깔려라.

 

아아 소쇄(蕭殺)스러운 풍경이어

지혜의 눈물을 내가 얻을 때!

이제금 알기는 알았건마는!

이 세상 모든 것을 

 

한갓 아름다운 눈얼림의 그림자뿐인 줄을.

이울어 향기깊은 가을밤에

우무주러진 나무 그림자 

바람과 비가 우는 나엽 위에.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하루라도 몇 번씩 내 생각은 

내가 무엇하라고 살랴는지?

모르고 살았노라, 그럴 말로

그러나 흐르는 저 냇물이

흘러가서 바다로 든댈진댄.

일로 쫓아 그러면, 이내 몸은

애쓴다고는 말부터 잊으리라.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그러나, 다시 내 몸,

봄빛의 불붙는 사태흙에

집짓는 저 개미

나도 살려 하노라, 그와 같이

사는 날 그날까지

살음에 즐거워서,

사는 것이 사람의 본 뜻이면

오오 그러면 내 몸에는 다시는 애쓸 일도 더 없어라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반달

희멀끔하여 떠돈다, 하늘 위에,

빛죽은 반달이 언제 올랐나!

바람은 나온다, 저녁은 춥구나,

흰물가엔 뚜렷이 해가 드누나.

 

어두컴컴한 풀없는 들은

찬 안개 위에로 떠흐른다.

아, 겨울은 깊었다, 내 몸에는,

가슴이 무너져 내려 앉는 이 설움아!

 

가는 님은 가슴엣 사랑까지 없애고 가고

젊음은 늙음으로 바뀌어든다.

들가시나무의 밤드는 검은 가지

잎새들만 저녁빛에 희끄무레 꽃지듯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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