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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시모음 2

푸른 메아리 2021. 5. 1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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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시모음 2

이육사(李陸史, 1905~1944) 경북 안동 출생, 본명은 활(活). 중국 북경대학 사회학과 졸업. 민족과 시에 대한 울분으로 중국에서 열 높은 항거와 방랑과 동경과 그 향수를 애절하게 표현, 시집으로 「청포도」가 있다.

 

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 주절이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황혼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내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내 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다오.

 

저-12월 성좌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산림 속 그윽한 수녀들에게도

시멘트 장판 위 그 많은 수인(囚人) 들에게도

의지가 없는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사막을 걸어가는 낙타 탄 생상에게나

아프리카 녹음 속 활 쏘는 토인들에게라도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다오.

 

내 5월의 골방이 아늑도 하니

황혼아, 내일도 또 저 -푸른 커튼을 걷게 하겠지

암암히 사라져간 시냇물 소리 같아서

한 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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