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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시모음 2
이육사(李陸史, 1905~1944) 경북 안동 출생, 본명은 활(活). 중국 북경대학 사회학과 졸업. 민족과 시에 대한 울분으로 중국에서 열 높은 항거와 방랑과 동경과 그 향수를 애절하게 표현, 시집으로 「청포도」가 있다.
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 주절이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황혼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내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내 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다오.
저-12월 성좌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산림 속 그윽한 수녀들에게도
시멘트 장판 위 그 많은 수인(囚人) 들에게도
의지가 없는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사막을 걸어가는 낙타 탄 생상에게나
아프리카 녹음 속 활 쏘는 토인들에게라도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다오.
내 5월의 골방이 아늑도 하니
황혼아, 내일도 또 저 -푸른 커튼을 걷게 하겠지
암암히 사라져간 시냇물 소리 같아서
한 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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